[문화]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2019. 3. 4. 13:26 | Posted by 꿈꾸는코난

<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 | 제바스타인 하프너 지음 | 안인희 옮김 + 돌베개


히틀러 관련 서적은 우리나라에도 꽤 여러 종이 나와 있는데 상당수는 먼저 그 크기로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다. 끝까지 읽기엔 힘에 부치고, 다 읽고 나도 워낙 양이 많아서 내용 요약이 쉽지 않다. 그에 비해 이 책은 히틀러 현상의 전체 의미를 간결하게 요약한다. 생애, 성과, 성공, 오류, 실수, 범죄, 배신 이렇게 일곱 개 장으로 나눠서 히틀러와 히틀러 현상의 모든 것을 낱낱이 짚고 넘어간다.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 안에 모든 것을 담아 놓았다. 


하프너에 따르면, 히틀러의 56년 생애를 설명하는 단 한마디는 결핍이다. 히틀러의 삶에서는 한 인간의 삶에 품위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모두 빠져 있다. 교육, 직업, 사랑, 우정, 결혼, 아버지 노릇이 전혀 없다. 히틀러는 정치와 정치적 열정을 빼면 아무 내용이 없는 삶, 너무나 가벼워서 쉽게 내동댕이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언제든 자살할 수 있다는 각오가 히틀러의 정치 경력을 늘 따라다녔고 마지막에는 당연하게도 정말로 자살했다.


그렇다면 이렇듯 별 볼일 없이 출발했고 너무나 큰 결핍과 결함을 지닌 히틀러가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그건 히틀러의 성과와 성공이다. 히틀러의 성과 중에서도 단연 첫손에 꼽히는 것은 경제기적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히틀러의 성공이 스스로 무너지기 직전의 쉬운 적들을 상대로 얻은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은 얼마되지 않아 터무니없는 오류를 안고 있는 조악한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바탕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참극인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학살한다. 또한 히틀러는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로스보다는 차라리 연쇄 살인범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프너는 히틀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독일이라고 말한다. 유대인 말살마저 불가능해지자 히틀러는 이번엔 민족의 죽음을 기도했다. 마지막에 히틀러는 “가장 훌륭한 말이 더비 경주에서 우승하지 못했다고 분노하고 실망하여 말을 채찍질하여 죽이는 경주마 주인처럼 행동”했고, 그 결과 독일에는 죽음과 황무지만이 남았다. 전쟁 중 사망자도 700만 명에 이르렀다. 마지막에 히틀러는 오로지 민족의 배신자였을 뿐이었다.


귀도 크노프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히틀러 노스탤지어는 무지라는 토양에만 거주한다. 히틀러에 대해서 거의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만이 그에게 열광할 수 있다. 전염성이 강한 히틀러 열병에 최고의 치료제는 과거나 현재나 히틀러에 대한 지식뿐이다. (……) 히틀러의 볼모로 남아 있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일의 트라우마인 히틀러를 늘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의식에서 밀어내면, 그것은 우리를 압박해 올 것이다. 우리가 다가가면 스스로 물러난다. 히틀러와 그의 탓으로 생긴 재앙을 알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이 책보다 더 나은 책이 없다” 이 책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