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적당히 가까운 사이

2020. 9. 10. 12:31 | Posted by 꿈꾸는코난

< 적당히 가까운  사이 > | 댄싱 스네일 지음 | 허밍버드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과의 관계는 어디까지가 적당한 거리일까? 물론 사람마다 조금씩 그 거리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거의 가족만큼 가까운 거리가 되어야 친한 사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친한 사이라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회사든 개인 관계든 그 거리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 나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그 거리를 좁혀 온다거나, 나 자신보다 상대방이 더 거리를 둔다거나 하는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상황이 된다.


모든 삶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본인이 느끼기에 가장 편한 거리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편한 거리가 되는 것 같다. 배려한답시고 너무 상대방을 맞춰주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본인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 적당함의 기술 -1 ]

마음은 원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에 앞서 움직이지 말고, 마음이 먼저 가게 두자. 오는 사람에게 편안하게 애정을 주고, 가는 사람에게서 좀 더 담담하게 마음을 거둘 수 있기를.


[ 적당함의 기술 -2 ]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상황에 따라 더 편안한 관계의 형태로 '적당히' 옮겨 다니는 '관계 유목민'이 되어 보자.


[ 적당함의 기술 -3 ]

누군가를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느냐와 관계의 농도가 반드시 정비례할까. 관계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나는 시간이 아닌, 보이진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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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류세: 인간의 시대

2020. 9. 10. 11:40 | Posted by 꿈꾸는코난

< 인류세: 인간의 시대 > | 최평순,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제작진 지음 | 해나무


[지질시대]

좁은 의미로는 가장 오래된 암석이 형성된 약 38억 년 전부터 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약 1만 년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보다 큰 의미로는 약 38억 년 전부터 현재까지로 정의하며, 가장 크게는 지구가 탄생한 뒤부터 현재까지로도 정의된다.

지질시대는 지층 내의 표준화석의 급변화와 부정합과 같은 큰 지각변동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단위는 큰 것부터 차례로 누대(累代, eon), 대(代, era), 기(紀, period), 세(世, epoch) 등이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는 대에 속하고, 선캄브리아대는 현생누대의 전인 원생누대, 시생누대, 하디안누대를 합한 누대이다. 합하여 부르는 이유는 시생누대나 원생누대에 만들어진 화석을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질시대의 연령은 방사성원소의 붕괴를 이용한 절대연령 측정을 통해 알아낸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의 기(紀, period)명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암석이 주로 나타나는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예를 들어 중생대의 쥐라기는 스위스와 프랑스에 있는 쥐라산맥에서 이름을 따왔고, 고생대의 데본기는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데본셔군의 이름을, 캄브리아기는 로마시대 웨일즈 지방의 이름을 따왔다. 신생대의 제3기와 제4기의 세(世, epoch)명은 그리스어로, 홀로세는 완전한 현재, 플라이스토세는 거의 현재, 에오세는 현재의 새벽, 팔레오세는 현재의 이른 새벽을 뜻한다.

(두산 백과 정의)


현재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지층 내의 표준화석의 변화같은 큰 지각 변동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지질시대의 연령은 방사성원소의 붕괴를 이용한 절대연령 측정을 통해 알아낸다. 지질학은 시간을 다루는 학문이다. 46억년 지구 역사에서 한 세에서 다음 세로 이동하는 데 수백 또는 수천만년이 걸리게 된다. 공식적으로 현재의 지질시대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다. 홀로세는 약 1만1700년 전에 시작되어다. 그런데 인류에 의해 지구가 짧은 시간동안 급격하게 변했기 때문에 홀로세와 구별되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명명하자는 것이 인류세의 담론이다.

( - p.18 - )


여태 지구상에 생존해 온 다양한 생물은 지구 환경을 거스리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왔다. 지구 환경에 영향을 줄만한 어떤 행위를 하지도 않고 변화시키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유독 인간만이 다양한 과학과 기술의 개발을 통해 지구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그 변화가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여태까지의 지질시대가 오랜 시간 누적된 지각변동을 기준으로 구분되었다. 여태까지는 자연스러운 환경변화에 따라 대기의 변화 및 지각의 변동이 있었다면, 인간이 출현한 얼마되지 않은 기간동안은 인위적으로 지구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대한 흔적을 지구 곳곳에 남기고 있다.



인간은 단순 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에 다양한 재앙을 가져 오고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염병과 자연재해가 예전보다 훨씬 많이 벌어지고 있다. 무분별한 인간의 다양한 행위가 전 지구를 병들게 하고 인간 자체도 서서히 파멸의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류세라는 표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냥 어느 과학자의 주장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미 지질학계의 공식 발표도 있었고, 인류세 실무그룹이 인류세를 정식 지질시대로 인정하자는 내용의 제안서를 준비중에 있다고 한다. 이 제안이 통과되게 되면 인류세가 공식으로 인정되는 것이며, 자연적인 지질시대 구분이 아닌 인위적인 환경변화에 의해 지질시대가 구분되는 첫 사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각 지질시대마다 대표적인 표준 화석이 있다. 고생대는 삼엽충, 중생대는 암모나이트이다. 만약 인류가 멸명한 후 또는 미래에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화석을 발견한다면 우리 시대의 화석으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닭뼈가 가장 유력한 후보다. 77억명의 인구가 230억마리의 닭과 함께 살아간다. 이미 닭뼈는 지구 전역에서 화석화가 진행 중인데 수적으로 규모가 크고 지리적으로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인류세를 대표할 만한 화석으로 지목되고 있다. 먼 훗날 인류가 멸망하고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지구를 지배한 동물이 닭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야생 생물을 지키려는 인간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르웨이에 있는 국제종자저장소이다. 전세계의 씨앗을 모아서 보관하는 역할을 한다. 동물 유전자에 대해서도 유사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동물의 유전자를 모아 보과하는 냉동방주 프로젝트이다. 이러한 다양한 유전자 보관의 노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간과의 생존이 불가능한 다양한 생물종이 멸종의 길로 가고 있고, 최소한 그 유전자를 보관하려는 어쩔수없는 인간의 노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부터 공존의 방법을 택했더라면 이러한 추가적인 노력없이 지구상에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종보다고 강력한 종임은 부인할 수 없다. 육체적인 능력으로만 보면 홀로 생존하기 힘든 종 중의 하나이지지만 뛰어난 두뇌와 다양한 도구의 발명을 통한,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 되었다. 그리고 인류라는 하나의 종이 지구 환경 전체를 바꾸는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지구 곳곳에서 홀로세와 구분되는 새로운 지표가 발견되고 있으며 그 진행도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플라스틱인 것 같다. 단순 지구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마스크의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함부로 버린 마스크에 끼어 생존의 위협을 받는 다양한 동물 사례를 접하게 된다. 특히 플라스틱은 재활용도 쉽지 않지만 바다로 흘러들어가면서 미세플라스틱으로 쪼개지게 되고, 그것이 다시 바다 생물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2차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마스크보다 더 심각한 동물 생존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도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많은 인구가 대도시와 그 주변에 몰려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그 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쓰레기와 오염물들, 그리고 생활 편의시설에서 나오는 다양한 가스들이 더욱 심각하게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 같다. 몇몇 대도시를 보면 항상 대기 상태가 뿌옇게 되어 있고 강도 정화되지 않고 오염된 상태로 그대로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이러한 문제는 도시에서 출발했지만 거기에 머물지는 않는다. 작은 열대섬, 정글, 해변 등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대양 몇군데서 발견되는 쓰레기 섬이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쓰레기가 모여 만들어진 인위적인 쓰레기 더미이며 상상을 초월할만큼 큰 쓰레기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이 아님은 분명하다. 인간은 이 지구를 구성하는 다양한 종과 공존해서 살아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무분별한 환경 오염을 줄이고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칠만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자제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지구를 새로운 대멸망의 시기로 이끌고 가는 것은 인간이나 지구 관점에서 대단히 큰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지구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인간이 하고 싶은 대로 지낸다면 지구의 파멸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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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게임 오버

2020. 9. 3. 17:57 | Posted by 꿈꾸는코난

< 게임 오버 > | 한스 페터 마르틴 지음 | 이지윤 옮김 | 한빛비즈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촛불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기득권의 반발은 현재 진행 중인것 같다. 대표적인 것으로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를 들 수 있겠다. 또한 보수단체의 끊임없는 비방과 사이비 언론의 가짜뉴스까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힘들만큼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들어 탈북민 단체를 중심으로 한 행동을 통해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탈북민 단체가 주장하는 자유는 무한정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무엇이 이들을 정권에 반대하고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단순히 자신들이 원하는 정권이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전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대한민국은 방역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다른 나라처럼 공권력을 동원하지도, 경제를 일방적으로 셧다운시키지도, 국경을 완전 봉쇄하지 않으면서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코로나-19에 안정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잘 대응하고 있더라도 한 나라의 경제는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전세계에 퍼져있고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가 전세계 인류에게 던지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현재 세계화의 힘은 지속가능한 궤도를 이탈한지 오래되었고 글로벌 금융시장이 합리적으로 규제되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다. 독재자와 방위산업 투기꾼, 헤지펀드 매니저, 공동의 복지에 아랑곳하지 않는 수많은 부자들까지 옳지 않은 권력자들이 넘쳐나고 있으나 그에 대응할만한 세력은 오랫동안 이 땅에 나타나고 있지 않다.

( - p.7 - )


이미 다양한 책과 기사를 통해 전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다양한 권력에 대해 언급된 적이 있다. 시장 논리에 의해 전세계의 경제도 알아서 잘 운영될 것이고 생각하지만 실제 제대로된 규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IMF와 같은 국제 금융 기관이 이미 강대국 중심으로 강대국 이익을 따라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계화가 절정에 이르면서 새로운 사회 정의의 구축이 불가피해 보인다. 점점 더 많은 세계화의 수혜자들이 민주주의 철폐에 힘을 쏟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분노에 차 봉기하던 중 권위주의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가난한 사람들과 접점을 갖게 된다. 기존의 민주주의로를 이 두세력이 맞물려 만든 'X자 집게'를 결코 분해할 수 없을 것이다.

( - p.53 - )


대표적인 인물로 트럼프를 들수 있을 것 같다. 비록 트럼프의 당선을 이미 예상했다는 몇몇 책들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 누구도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민주적 대안을 선호하는 경향이 이미 젊고 부유한 미국 시민 사이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젊고 부유하 부유한 시민들이 군부 통치 가능성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청년, 부자, 특권층으로 부터 반자유적 정치가 점점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핑커는 <지금 다시 계몽의 시대>라는 책에서 지나치게 낙관론적인 관측을 내세웠다. 그 덕분에 시대의 불안을 잠재우는데 한 몫을 했고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현실이 과연 낙관론으로 미화할 수 있을까? 핑커는 복지, 교육, 민주주의, 안보 등 모든 것이 아주 오랜동안 점점 더 좋아지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러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류의 진보가 이루어 진것은 맞다 하지만 빈곤 문제, 기아 문제, 불평등 문제, 교육 문제 등은 그 주장에 한참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빌게이트도 부정적으로 언급한 인공지능 문제는 핑커 교수의 견해가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이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현재의 세계화를 이렇게 미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유령이 판치도록 돕는 것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16~24세의 미국 시민 중 4분의 1이 민주주의 정치체계가 국가 운영체계로서 나쁘거나 매우 나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유럽 연합 내의 인구가 많은 7개국에 거주하는 젊은이들 중 4분의 1도 민주주의가 다른 국가체제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쟁의 비극과 독재권력의 잔혹함을 실감했던 시민들의 영향력이 점점 힘을 잃어감에 따라 나치나 파시스트 보다는 성공한 착한 독일인과 같은 이미지가 새겨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그저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안에 뭉뚱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우파 포퓰리즘이 지향하는 핵심이 민족주의적이고 독재적인 구조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과 미디어가 한 축을 맡은 민주주의의 실제 구조에서 미디어는 최고의 권력기관이나 다름없다. 이미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맹목적인 언론 비난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나쁜 뉴스와 가짜 뉴스를 거리낌없이 양산해 내는 언론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신자유주의자들과 독재주의자들이 새로운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고 가정할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이해 관계와 상반되는 투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 p.255 - )


이미 현실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많이 눈에 띄게 된다. 자신과 전혀 관련없는 일부 고액 투자자나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 적용되는 여러가지 정책에 대해 일반 중산층이하의 계층에서 반대를 한다거나 하는 부분이 해당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가 투표에 반영이 된다. 여기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사람들이 단지 객관적 근거만을 가지고 선거에 임하는 것이 아니고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문화적 소속감이나 정체성이 표현되는 통로로서의 기능이 강하다는 것이다. 정서적 변화 또한 정치 행동을 추동하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거나 불이익을 느꼈을 때 절대적인 상황을 따지지 않고 상대적인 위치에 의해 유익한가를 따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계속 진행 중이다. 트럼프에게는 전쟁이 필요하고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한 계속 전쟁을 일으키려고 할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쟁, 일본과 러시아의 영토 분쟁 등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겠지만 궁긍적으로 그 희생은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나타나게 된다.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세계 시장이 새로운 관세 장벽으로 막힐 수 있기 때문에 투자를 철회하고 생산도 꺼리게 된다. 전반적인 일자리가 줄게 되고 남아도는 물건은 다른 시장에서 싼 가격으로 팔리게 된다. 이러한 전반적인 하강곡선의 결과는 몇달 후 또는 몇년 후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경전쟁과 사이버상 전쟁까지 강대국이 포함된 전쟁은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전쟁은 미중 전쟁이다. 관세를 둘러싼 무역분쟁이 벌어지고 있고 그 이후 환율전쟁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중국의 대표기업에 대한 제제로 이어지고 있고, 외교시설에 대한 철수와 외교관 추방에까지 이르고 있다.


우리는 변화의 흐름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세상이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그에 못지 않게 위기의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와 위험의 신호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대화하는 것인 것 같다. 그리고 교육으로 사회적 균형을 이루고 미래를 이성적으로 포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정서 교육와 미디어 활용 교육이 필요하고 디지털 인권에 대한 보호도 중요시 되어야 한다.


파멸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의 체계를 전환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구성원 간 신뢰를 회복하고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서 균형있는 분배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회복하고 게임이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