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MB정권만큼 법을 존중(?)하는 정부는 없었던 것 같다.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가 그놈의 '법치, 법치, 법치.' 누가 MB 정권 아니랄까봐, 우리가 법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도 매우 독특하다. 국민이 법을 지키면 GDP가 0.9%가 성장한다나? 그렇다면 '떼법' 청산하겠다며 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지난 1년 동안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법조인들의 말을 들어 보자. 얼마 전 <법률신문>에는 법률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거기에 따르면 이렇다.
"변호사와 법학교수 등 법률가 10명 중 6명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법치주의가 이전보다 후퇴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정도 발전했다는 견해는 1명꼴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참여정부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법치주의 확립을 국정지표로 삼고 있음에도 정권 출범 직후부터 계속된 촛불집회를 둘러싼 논란과 미네르바 사건, 신영철 대법관 재판 관여 의혹사건 등이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새 정부 출범 후 법치주의 후퇴' 법률신문 2009/04/28)
법률가들은 법치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정·재계 인사 등 사회지도층의 반(反)법치주의적 행태"를 꼽았다. 정부의 이른바 '떼법' 청산 캠페인("법질서 바로세우기 운동")에 법률가들은 5점 만점에 1.84점을 매겼다. 나아가 '새 정부 집권 5년 동안 법치주의가 어느 정도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5.6%가 퇴보할 것, 34.8%가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해, 10명 중 8명이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난무하는 법 속에서 정작 법치주의는 후퇴했다는 이 역설. 법치주의 확립을 국정지표로 내세운 정권에서 법치주의 앞날이 암담하다는 이 역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법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ce)가 그동안 손에 든 저울(=공정함)은 내팽개치고, 덩덩 덩더쿵, 시퍼런 칼을 휘둘러 애먼 사람들을 잡는 선무당이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동안 검찰과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성을 잃어버리고,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는 얘기다.
"응답자들은 '사법권 독립이 강화됐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40.7%가 많이 약화됐다, 17.4%가 약간 약화됐다고 답했다. 10명 중 6명가량이 이전 정부에 비해 사법권 독립이 후퇴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 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향상됐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53.0%가 많이 후퇴했다고 답했고, 13.3%가 약간 후퇴했다고 답해 전체의 66.3%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법의 날 기념 설문조사 분석' <법률신문> 2009/04/28)
그동안 일어날 일을 복기해 보자. 사법부에서는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하여 판사들의 집단반발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신영철 대법관은 사퇴 요구를 받았다. 검찰은 어떤가? 정치적 보복수사로 전직 대통령을 비극적인 자살로 몰아갔다. 그 사건으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옷을 벗었다. 그에 앞서 경찰의 무리수가 있었다. 경찰은 상식을 넘어선 무리한 진압으로 용산 철거민 다섯 명을 화염으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으로 김석기 경찰총장이 물러났다. 단 몇 달 사이에 경찰, 검찰, 사법부에 골고루 유고가 생겼다. 이 세 사건은 물론 하나의 동일한 원인을 갖는다.
MB 정권이 말하는 '법치'는, 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적용으로 애먼 시민을 범법자 만드는 능력을 과시하는 데에 있다. 법은 난무해도 법치가 후퇴한 것은 이 때문이다.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법을 새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없던 법이 새로 생기다 보니, 시민은 경찰이나 검찰의 연락을 받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범법을 했는지를 알게 된다. 경찰과 검찰이 행사하는 이 사실상의 입법권이 시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 종잡을 수 없는 자의성 앞에서 시민은 법을 '방패'가 아니라, '흉기'로 느끼게 된다. 국민들은 MB 정권에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복수의 칼, 감사와 세무조사
유고가 생긴 곳이 또 있다. 바로 국세청이다. 연임을 앞두고 재계 600위권의 회사를 몇 달 동안 털어 MB에게 직보했다는 한상렬 국세청장은 수사가 시작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덕분에 국세청장의 자리가 6개월 동안 비어 있는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찾던 삼계탕집이 세무조사에 걸려 10억 원을 추징당했단다. 국세청이 시민사회를 타깃으로 삼는다면, 공공기관의 장악에는 감사가 제격이다. 특히 문화계에서 이른 좌파인사들을 적출하는 데에는 감사가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최근 사회를 시끄럽게 한 한예종 사태는 그것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MB 정권 출범 이후 "수사기관의 계좌 추적 등 금융정보 요구 건수가 참여정부 때보다 3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민주당 정치보복진상규명특위(위원장 박주선)가 12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08년 수사기관이 요구한 금융거래 정보는 8만683건으로, 참여정부 5년 동안의 연평균인 3만340건보다 2.7배 높았다. 올해는 1~3월 석 달 동안에만 6만4721건에 이르렀다. 이는 2003~2007년 동안의 석 달 평균치인 7585건에 견줘 무려 8.5배 이상 많은 수치다. 감사원의 자료 요구 건수도 부쩍 늘었다. 참여정부의 연평균치가 50건이었던 데 비해 2008년엔 358건으로 7배 이상 늘었다. 국세청의 경우엔 참여정부 평균 1만4903건에서 2008년엔 2만9261건으로 갑절 증가했으며, 올해 석 달치는 1만8888건으로 참여정부 시절 3726건보다 5배나 높다." (<한겨레신문> 2009/06/12)
MB 정권 하에서 감사가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 역설적으로, 이는 MB정권의 수렵견들이 누구보다 더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애써 감추지 않고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1차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종료되었기 때문에, 시민을 위한 변호사들 측과 상의를 하여, 우선적으로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하고, 감사원이 직접 황지우, 진중권 등을 고발하도록 요청할 것이다." (빅뉴스 2009/05/21) / "고로 문화미래포럼과 별도로 인미협 차원에서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하여 대대적인 감사를 하도록 할 것이다." (빅뉴스 2009/05/25) / 인미협은 일단 문화체육관광부의 부실한 감사결과는 제쳐놓고,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하여, 거기서 비리가 확인되면 그때 검찰 고발할 것이다. (빅뉴스 2009/06/10)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이 프로세스에 따르면, 감사 뒤에는 검찰의 수사가 따르게 되어 있다. 법이 난무해도 법치주의가 후퇴하는 이유를 여기서 볼 수 있다.
21세기 디지털시대를 토목 마인드로 이끌어가려는 우리의 재판 박정희에게, 입법부의 이상적 상태는 '거수기'가 되는 것이고, 사법부의 이상적 상태는 '선무당'이 되는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권력은 당연히 3공과 5공 시절처럼 자신을 지탱해줄 유일한 보루로서 경찰과 검찰의 칼에 의존하게 된다. 물적 토대('경제')에 대한 퇴행적 관념은 이렇게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입법과 사법)에 대한 퇴행적 관념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구성체는 MB 정권 1년 반 만에 총체적인 퇴행성 발달장애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