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월성을 걷는 시간

2022. 9. 8. 10:47 | Posted by 꿈꾸는코난

< 월성을 걷는 시간 > | 김별아 지음 | 해냄

 

경주하면 생각나는 장소는 대부분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등일 것이다. 그리고 야간 명소로 소문난 동궁과 월지라던가 여러 릉을 떠올리게 된다. 월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구체적인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실제 신라의 궁에 대한 부분은 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특히 신라 약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궁에 대한 부분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935년까지 992년 동안 신라는 서라벌-경주라는 도읍에서 시작과 끝을 같이 했다. 이 신라의 천년 왕성이 바로 월성이다. 물론 신라의 시작부터는 아니지만(대부분의 궁이 그렇지만) 파사이사금 떄인 101년부터 신라가 멸망한 935년까지 834년 동안 신라의 궁성이었다고 한다. 한 나라의 궁성에 대해, 그것도 1000년 가까이 이어온 한 나라의 궁성을 거의 모르고 지냈다는 것과 그 궁성을 폐허가 된 채로 계속 방치하고 있었던 것도 좀 문제인 것 같다.

유네스코는 2000년 12월 경주역사유원지구를 세계 유산에 등재했으며, 유적의 성격에 따라 남산 지구, 월성 지구, 대릉원 지구, 황룡사 지구, 산성 지구 등 5개 지구로 나누었다. 특히 월성 지구는 국보 제31호인 첨성대를 비롯해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 왕궁의 별궁으로 짐작되는 동궁과 월지, 왕성인 월성을 포함하고 있다. 월성은 1910년대 일본인에 의해 성벽과 주변 상태를 파악되었으며 3기에 걸쳐 발굴 조사를 진행하던 중 2007~2008년 전면적 지하 레이더 탐색을 통해 그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장편소설 미실을 쓴 김별아 소설가가 실제 경주에서 발굴 중인 월성 내부와 외부를 둘러본 경험을 글로 쓴 것이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년을 잠들어 있던 도시인 경주 이야기, 월성 안에서의 이야기, 월성 밖에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 안에는 실제 역사적인 이야기와 그 당시 살았던 신라인(경주)의 삶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화랑세기 등 고문에 나오는 월성, 그리고 현재 월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저자가 감동있게 경험한 월성 발굴 조사 현장을 둘러보고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월성걷기 프로그램인 월성이랑은 기회가 되면 꼭 참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인터넷 확인 결과 아직 이 프로그램은 운영중인 것 같다).

2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여러 이야기 중에서 월성 발굴 중 드러난 두 구의 시신에 대한 이야기와 여러 토우 중 포함된 이방인의 존재는 월성에 대한 흥미를 한껏 끌어올리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 이외에도 신라인의 삶을 생생히 엿볼 수 있어서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월성 자체뿐만 아니라 월성을 둘러싸고 있는 동궁과 월지에 대해서 발굴 과정부터 의미까지 상세하게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또한 3장의 월성 밖의 이야기에서 신라인의 다양한 삶과 역사적인 의미를 살펴 볼 수 있었다. 특히 최근 언급이 많이 되고 있는 황룡사지를 포함해서 대왕암, 그리고 3국의 왕성 비교까지 신라의 다양한 면을 한권의 책으로 접할 수 있는 것 같다.

 


월성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월성 단독으로는 존재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왕이 살았던 궁이기는 하지만 분명 주변 백성들의 삶이 존재하고 그 당시를 살았던 역사가 존재하기에 월성과 그 주변의 이야기가 동시에 언급되어야 제대로 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좀 더 명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월성에 대한 발굴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하고 있다는 부분도 인상이 깊었다. 일반적으로 발굴 성과때문에 발굴을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월성은 너무 오랜시간 잊혀져 있었기 때문에 발굴에 대한 기술적인 난이도가 높고 아직 규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후대에 발굴이 진행되면 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함부로 발굴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빠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확히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신라 10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월성을 이 책을 통해 같이 거닐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월성 주변을 실제로 거닐어 볼려고 한다. 잘 몰랐던 신라의 왕궁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에세이]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2022. 5. 11. 13:18 | Posted by 꿈꾸는코난

<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 | 김탁환 지음 | 해냄

 

한 때 섬진강가에 있는 하동 펜션으로 종종 휴가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면 주인 내외분 말고는 사람들도 별로 마주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적적함이나 외로움보다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꼭 사람들과 마주치고, 주변에 화려한 것이 있어야만 되는 것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냥 주변의 나무 하나, 섬진강가를 여유롭게 산책하는 산책로, 여기저기 핀 꽃들 하나 하나가 그냥 소중하게 다가오고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의 그 느낌을 그대로 되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한적한 곳을 여기저기 다녀보곤 했지만 하동의 섬진강가만큼의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느낌으로만 다가오는 그런 감정인 것 같다. 물론 저자가 터를 잡은 장소는 하동이 아닌 곡성이지만 글 하나 하나를 통해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같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저자가 작가로서 새로운 10년을 계획해야 할 시기에 새로운 세계로 다가가서 살피고 사귀며 글을 쓰고자 곡성에 집필실을 마련하고 섬진강 옆 집필실에서 초보 마을소설가이자 초보 농부로 글농사와 함께 논농사를 짓고 텃밭도 가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떨 때는 짧은 한두 문장으로, 어떨 때는 2~3페이지에 걸친 긴 글로 디테일한 일상을 사실 그대로 담고 있다. 마치 저자의 일상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한 생생함을 같이 공감할  수 있었고, 계절의 변화를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가는 만물의 그늘을 보는 자다. 누군가가 자신의 빛을, 꽃을, 하늘로 쭉쭉 올라가는 줄기와 가지를 이야기할 때, 나는 그 이야기에 없는 웅덩이 같은 침묵을 찾아 만진다. ..."
- < 기일 > 중에서 -

"아름답게 쓴다고 정확함이 따라오진 않는다. 정확하게 쓰려고 애쓸 때, 그 만남의 과정이 아름다운 문장에 깃드는 법이다. 그래야 비슷한 가짜에 속지 않고 진짜와 사귈 수 있다."
- < 정확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 중에서 -

"가짜 독수리와 진짜 참새의 싸움에서
가까의 승리를 바라는 농부는 자랑하지
재작년보단 작년이 비슷한데
작년보단 올해 더 비슷하게 만들었다네"
- < 독수리라던 사람이 있었지 > -

매달 제목을 달고 시작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1월은 가만히 견디며 낮게 숨 쉬는 달, 6월은 뽑을수록 허리가 아픈 달, 11월은 뿌린 것보다 더 거두는 달과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다. 제목만 보더라도 대충 어느달을 언급하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또한 중간 중간 파스텔톤으로 그린 풍경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한적함 속에 녹아있는 삶의 이야기이다. 마음의 편안함을 주고 일상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을 거닐고 싶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 | 정여울 지음 | 이승원 사진 | 해냄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데이비드 소로가 누구인지 잘 몰랐다. 그러다 보니 윌든 자체도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책을 읽어 가면서 소로가 어떤 사람인지, 소로에게 윌든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에 나오는 "시민 불복종"이란 책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그 인물을 모르지만 그 사람이 남긴 책은 제목이나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책의 시작을 보면 그냥 일반적인 자연인의 삶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북적북적한 도심의 삶을 피해서 한적한 호수에 터전을 잡고, 세속과 연을 끊고 살아가는 그런 삶을 연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가면서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자연속에서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좀 더 돈독하게 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오두막을 찾아오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삶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작가들이 소로를 찾아오고 같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또한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면서 그 관계를 유지하려는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정부에 반항하기 위해 인두세를 거부하고 투옥되고, 감옥에서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을 저술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고 영향을 주고자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윌든이라는 책을 읽지 않았고 윌든 호수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마치 그 책을 읽고, 그 책속에서 언급된 윌든 호수를 눈앞에서 바라고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인 정여율 작가가 가진 능력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의 시작도 그렇다. 저자가 윌든 호수로 독자를 초대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마음을 내려놓고 걱정과 슬픔을 벗어버리고 소로와 함께 숲과 호수를 산책하는 길로 인도한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2/3 가량을 차지하는 1부에서는 소로의 삶과 윌든 호수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인도하고 자연과 어울려 사는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중간중간 소로의 글을 소개하면서, 윌든 호수와 그 주변을 고즈넉한 분위기를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우리 발걸음을 조금씩 소로의 삶으로 인도한다. 복잡한 사람과의 관계와 경쟁적인 삶을 벗어나서 한순간이나마 한적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길로 인도하고 있다. 2부에서는 윌든을 통해 알 수 있는 다양한 인문학적 관점을 설명한다. 윌든의 경제생활로 부터 시작해서 인문학, 윤리학, 생태학까지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자연과 공생하며 살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소로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윌든 호수는 그저 그런 호수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곳에 오두막을 짓고, 자연과 주변 사람들과 공생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여줌으로 특별한 장소로 기억되고 남게 되는 것 같다. 소로와 함께 한다면 굳이 윌든 호수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산책길과 나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소유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삶, 자연을 이용하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삶은 그 나름대로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소로의 윌든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1 다음